Still Cut


Kwon Sojin

2023.2.13. (Mon) - 2023.3.4. (Sat)

단면과 장면들 : 권소진의 회화

권소진의 회화는 작가가 ‘상황-설명적인 그림’이라는 말로 서술하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시각적, 언어적, 서사적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장면’을 다룬다. 장면이라는 말의 영화적 뉘앙스는 그것이 단면이라는 물리적 측면과 구성물이라는 체계적이고 언어적인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상황-설명적’이라는 개념 속에는 재현적인 요소들과 추상적인 요소들의 세심한 연결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그림에는 경찰이나 사냥꾼처럼 보이는 사람들, 골프를 치는 사람들, 그리고 다람쥐, 개, 백조 등과 같은 구체적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그의 그림에는 사람의 모습이 잘려나간 듯한 캔버스와 잔해들, 흐릿하게 뭉개진 이미지들과 배경 등이 그려져 있고, 그리고 그림의 맥락을 마치 추상적 순간으로 치환하려는 듯한 소설적 제목들이 부여되어 있다.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그림에 그려져 있는 것들만큼이나 거기에서 빠져 있는 것들에 대해 상상하는 일이 된다. ‘어떤 사건’이 있었고 작가는 그것을 서술하고 있지만, 그 사건은 그림 안에서 완결된다기보다는 관객의 기억이나 경험, 즉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단면들과 연결되어 있다. 회화과 세계를 재현하는 이유는 더는 그것의 외면을 떠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현대회화의 커다란 화두라고 할 수 있다. 회화가 세계를 재현하는 이유는 그 세계의 재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단면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는 조직적이고 세심하게 그 단면들의 구성과 조합과 연결들을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권소진의 회화는 바로 그러한 단면들을 독자적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마도 여기에 동시대의 다양한 매체들, 특히 영화/드라마와 소설에 의해 각인되는 수많은 서사와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올리는 전형적이고 파편화된 장면들에 대한 작가의 인용 역시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관객들이 떠올리는 기억은 더 이상 각자의 고유한 기억이 아닌 정형화되고 연출된 대중매체의 기억들과 혼재되곤 한다. 어떤 것들은 미화되거나 또 어떤 것들은 끔찍한 모습을 띤다. 그러한 정형적 이미지들은 일상과 삶의 모든 순간들을 장면으로 치환한다. 아마도 화가가 그러한 유사성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저항하는 방법은 그것의 추상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기억과 이미지의 상투성, 예시적 성격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그것이 덧쓰려고 하는 의미와 경로들을 재배치하고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권소진의 회화가 보여주는 화면의 매력은 그러한 시도가 회화적 흡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가적 여정을 보여주는 많은 좋은 계기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유진상 교수, 평론가, 독립큐레이터